지역과 사람, 문화를 연결하는 일
한국의 아이들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 유행하는 캐릭터와 수입 IP로 채워진 교육 콘텐츠 속에서, 지역의 문화·역사 자산을 접할 기회는 구조적으로 부재합니다.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다른 문제가 진행 중입니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은 현재 89개소. 전국 228개 시군구의 46.1%가 소멸위험 상태에 해당하며, 읍면동 기준으로는 전국의 48%가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지역 인구가 줄어들수록 수천 년간 축적된 향토문화와 역사 자산 역시 기록되지 못한 채 소실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이 두 문제의 교차점에서 시작했습니다. 도시 아이들에게 지역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소멸 위기의 지역 문화를 콘텐츠화하는 접점, 그것이 아이들의 일상적 놀이인 색칠 활동지였습니다.
92,975건의 공공데이터를 도안 소재로
소재의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공신력 있는 공공데이터를 우선 수집·정제했습니다. 89개 인구소멸지역 전체에 대응하는 총 92,975건이며,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 믿을 수 있는 92,975개의 기록 :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개 인구소멸지역과 정확히 100% 일치하는 총 92,975건의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 문화, 역사, 그리고 자연 : 전체 데이터의 99% 이상은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85,182건)과 국가유산청(국보 및 천연기념물 7,253건)의 공신력 있는 문화·역사 데이터로 채웠습니다. 여기에 국립공원공단과 해양환경공단의 생태 자산, 89개 지자체의 대표 브랜드 및 캐릭터 정보를 더해 지역의 정체성을 촘촘히 엮어냈습니다.
- 데이터의 뼈대 세우기 : 수많은 정보가 섞이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하나의 셀에 병합된 정보들을 분리(Explosion)하여 데이터의 원자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모든 데이터의 1열과 2열에 매칭 결과와 원본 출처를 고정 배치하여, 언제든 출처를 추적할 수 있도록 관리했습니다.
| 분류별 데이터 | ||||
| 분류 (테마) | 데이터 출처 | 데이터 건수 | 비중 | 주요 활용 내용 |
| 문화/역사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85,182건 | 91.62% | 89개 지역별 향토문화, 역사적 기록, 민속 사진 등 |
| 문화/역사 | 국가유산청 (OpenAPI) | 7,253건 | 7.80% |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명칭 및 좌표 |
| 자연/환경 | 국립공원공단, 해양환경공단 | 377건 | 0.41% | 생태계 보호구역, 지질명소, 해양보호구역 공간 정보 |
| 지역 상징 | 89개 지자체 | 89건 | 0.10% | 지자체별 브랜드 슬로건 및 대표 캐릭터 |
| 특화 자산 | 국립공원공단, 한국농어촌공사 | 73건 | 0.08% | 생태관광 프로그램 인프라, 국가중요농업유산 |
아동 발달 기준을 설계 제약으로 적용
수집한 데이터를 5~7세 아동용 도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달 심리학 및 임상 가이드라인을 설계 제약 조건으로 반영했습니다.

크레용을 막아주는 ‘두꺼운 선’ : 3-4세 아이들은 손목이 아닌 팔 전체를 크게 움직여 색칠하기 때문에 얇은 선 안을 칠하는 것이 생체역학적으로 무척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미국작업치료협회(AOTA) 등의 권장에 따라 1.8~3mm(5~8px)의 아주 두꺼운 선을 ‘시각적 범퍼’로 사용하여 스스로 완성하는 성취감을 주었습니다.

주인공에 집중하는 ‘하얀 도화지’ : 존 스웰러 박사의 인지 부하 이론 등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은 복잡한 배경 속에서 자신이 집중해야 할 핵심 대상을 분리해 내는 능력(전경-배경 지각)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의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도록 배경 요소는 과감히 지우고, 지역의 핵심 피사체 딱 하나만 페이지의 60~80%를 큼직하게 차지하도록 단순화했습니다.

안전한 색칠 울타리, ‘닫힌 선’ : 아이들은 선이 조금만 끊겨 있어도 전체 그림을 유추하는 능력이 부족해 혼란을 느낍니다. 스케치 느낌을 내기 위해 선을 끊어 그리는 실수를 피하고, 모든 형태를 완벽히 연결된 ‘닫힌 경로(Closed Paths)’로 그려 명확한 색칠 가이드를 제공했습니다.

상상력을 여는 ‘단순함’ : 아동 미술의 대가 빅터 로웬펠드에 따르면, 어른 기준의 세밀한 묘사보다는 직관적인 실루엣과 단순한 도형 형태가 아이들의 인지와 창의력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이를 반영해 복잡한 유산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고, 픽셀 깨짐이 없는 300 DPI 고해상도와 순수한 검은색(K=100) 선을 사용하여 눈이 편안한 인쇄 품질을 확보했습니다.
| 설계 원칙 근거 표 | ||
| 핵심 설계 원칙 | 적용 가이드라인 (전문 출판/렌더링 규격) | 설계의 발달 심리학적 근거 |
| 전경-배경 분리 | 장식적 선 제거, 1개의 핵심 피사체 위주 설계 (배경 소거) | 수많은 정보 중 집중해야 할 대상(Figure)과 배경(Ground)을 분리하는 능력이 미숙한 영유아의 인지 부하 차단 |
| 닫힌 경로 (Closed Paths) | 스케치 느낌의 끊어진 선 배제, 완벽하게 연결된 닫힌 외곽선 사용 | 일부 정보가 누락되어도 전체를 완성해 내는 ‘시각적 폐쇄성’이 부족한 아동에게 명확한 형태 인식 단서 제공 |
| 기하학적 단순화 | 어른 기준의 세밀한 묘사 지양, 큼직하고 상징적인 실루엣 구성 | 사물의 디테일보다 ‘전반적인 특징’에 집중하는 아동의 형태 인식 특성 및 창의적 구성의 기회 부여 |
| 선의 위계 및 명료화 | 1차 외곽선 강조(두껍게), 내부 묘사 축소(얇게)하는 위계 적용 | 단색 선화에서도 명확한 깊이감을 주고, 완전한 순수 검정(K=100) 및 300 DPI 렌더링을 통해 시각적 혼란 방지 |
한눈에 보는 통합 개발 프로세스
빅데이터, 영유아 뇌과학, 그리고 AI 생성 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다음의 6단계 프로세스를 거쳤습니다.

- 기획 및 분석 : 누리과정 연계 데이터 매핑 및 아동/교사 페르소나 정의
- 데이터 및 뇌과학 리서치 :9만여 개 공공 데이터 정제 및 7세 미만 시지각 발달 한계 가이드라인 분석
- 설계 및 AI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 VMI, 시각적 폐쇄성, 기저선(Baseline) 등 뇌과학 지표를 AI 제약 조건(Constraints)으로 번역 및 시스템 설계
- AI 자동화 구현 : 정제된 지역 데이터와 뇌과학 프롬프트를 결합하여 AI에 대량 생성 요청 및 1차 시안(알파 버전) 렌더링
- 검증 : AI 생성 이미지의 닫힌 경로 오류, 데이터 오탈자 교차 검수(QA) 및 현장 사용성 테스트(UT)
- 완료 및 출시 : 피드백 반영, 블리드(Bleed) 안전 여백 준수 및 매체 규격화
차가운 9만 개의 데이터, 아이들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날수 있을까요?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89개의 인구소멸지역. 자칫 차가운 통계나 사라져 가는 위기로만 남을 뻔했던 9만 2천여 개의 공공 데이터가 아이들을 위한 다정한 스케치북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방대한 역사 기록이나 국가유산청의 좌표 데이터는 본래 어른들의 딱딱한 언어입니다. 하지만 이 기록에 ‘아동 발달 심리학’이라는 따뜻한 필터를 씌워 새로운 콘텐츠로 생산하였습니다.
서툰 손길을 다정하게 잡아주는 3~4mm의 두꺼운 테두리 선 안에서, 그리고 주의력을 흩트리는 복잡한 배경이 사라진 하얀 도화지 위에서, 잊혀가던 지역의 천연기념물과 오랜 사찰이 아이들의 크레용을 통해 다시 다채로운 색을 입게 된 것입니다.
소멸되는 지역에서 시작된 이 작은 프로젝트는, 결국 아이들과 지역 사회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크레용을 꽉 쥐고 사라질지도 모를 동네의 상징을 삐뚤빼뚤 칠해가는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역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정과 자부심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소멸해 가는 89개 지역의 가장 빛나는 유산들이, 우리 아이들의 도화지 위에서만큼은 영원히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